「최PD의 심해 다큐」 제1화 — 좋은 다큐는 늘 수면 아래 있습니다.

넷플릭스에는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정작 돈을 많이 들인 작품은 첫 화면 맨 앞줄에 걸리고, 진짜 물건은 스크롤을 세 번쯤 내려야 겨우 모습을 드러냅니다. 저는 그 아래쪽을 뒤지는 일을 좋아합니다. 30년 동안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살았으니, 직업병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렇게 건져 올린 작품들을 한 편씩 소개하려고 시작합니다. 첫 번째로 꺼낼 작품은 <나의 문어 선생님>(My Octopus Teacher, 2020)입니다.

제목만 보고 그냥 지나쳤던 다큐

고백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한참 동안 지나쳤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제목 때문이었습니다.

문어 이야기?

그 한 줄이 전부였습니다. 손가락은 이미 다음 칸으로 넘어가 있었습니다. 다큐를 만드는 사람도 다큐를 고를 때는 별수 없이 게으릅니다. 제목이 감정을 자극하지 않으면 손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딱히 볼 것이 없어서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리고 그 뒤 몇 시간 동안, 저는 한 40대 남자의 성장통 드라마를 눈물을 흘리며 보고 있었습니다.

작품 정보 한눈에 보기

제목나의 문어 선생님 (My Octopus Teacher)
공개2020년 9월 7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제작 국가남아프리카 공화국
감독피파 얼릭, 제임스 리드
제작 · 출연크레이그 포스터 (다큐멘터리 감독 · 박물학자)
촬영 장소케이프타운 인근 폴스만(False Bay), 사이먼스타운 근처 다시마 숲
러닝타임약 85분
관람 등급전체관람가
주요 수상제93회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 영국 아카데미(BAFTA), 미국 제작자조합상(PGA)

줄거리 — 번아웃된 남자가 바다로 들어갔습니다

주인공 크레이그 포스터는 잘나가던 다큐멘터리 촬영감독이었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소진된 사람이었습니다. 카메라를 들 기운도, 사람을 만날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상담도, 여행도 아니었습니다. 집 앞 바다였습니다. 케이프타운 남쪽, 대서양의 차가운 벵겔라 한류가 밀려드는 해역. 수온이 한 자릿수까지 떨어지는 그 물속으로, 그는 잠수복도 산소통도 없이 맨몸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조개껍데기와 돌을 잔뜩 뒤집어쓴 이상한 덩어리를 발견합니다. 위장을 풀고 나온 것은 어린 문어 한 마리였습니다.

그날부터 1년 가까이, 그는 거의 매일 같은 자리로 내려갑니다. 경계하던 문어는 조금씩 거리를 좁히고, 어느 순간 팔 하나를 뻗어 그의 손에 올립니다. 그 장면에서 저는 처음으로 눈이 뜨거워졌습니다.

그가 한 말 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문어를 이해하고 싶어서 세상에 나온 문어 관련 논문과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한마디에서 이 작품의 정체를 알아차렸습니다. 이건 자연 다큐가 아닙니다. 한 인간이 무언가에 다시 미쳐보기로 결심한 기록입니다.

30년 다큐 PD의 시선 — 이 영상은 도대체 어떻게 찍혔나

일반 시청자에게는 그냥 아름다운 수중 영상일 것입니다. 저는 다른 것이 보였습니다. 현장에서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1. 잠수복도, 산소통도 없습니다

수온이 낮은 바다에 맨몸으로 들어가는 것은 낭만이 아니라 고통입니다. 손끝 감각이 먼저 사라지고, 그다음은 판단력입니다. 그런데 이 남자는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그 안에 머뭅니다. 잠수 시간은 나중에 6분 가까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취미의 영역이 아닙니다.

2. 왜 굳이 그렇게 찍었을까

산소통을 메면 기포가 생기고 소음이 납니다. 문어는 도망갑니다. 즉, 이 촬영 방식은 멋을 부린 게 아니라 피사체에게 접근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장비를 포기해야만 얻을 수 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현장 사람이라면 이 선택의 무게를 압니다.

3. '매일 1년'이라는 숫자

다큐에서 가장 비싼 자원은 장비도 인력도 아닌 시간입니다. 방송사 다큐는 보통 몇 달 안에 끝을 봐야 합니다. 1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자리에 내려간다는 것은, 기획서를 쓰고 승인을 받아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제작진이 아니라 인간이 결심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이 작품이 특별한 진짜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4. 편집이 만든 드라마

1년 치 소재를 85분으로 줄이면 대부분은 버려집니다. 이 작품의 편집은 문어의 생태를 설명하는 대신, 철저하게 포스터의 감정선을 따라갑니다. 문어가 상어에게 다리를 잃는 사건, 그리고 그 다리가 다시 자라나는 과정이 그의 회복과 나란히 놓입니다. 이건 우연이 아니라 설계입니다. 자연 다큐의 문법을 버리고 성장 드라마의 문법을 택한 것입니다.

제가 이 작품을 '40대 남자의 성장 드라마'라고 부르는 이유

이 다큐의 진짜 주인공은 문어가 아닙니다. 문어는 거울입니다.

남자는 세상에 지친 마음을 문어라는 친구를 통해 위로받습니다. 그리고 문어를 관찰하면서 시간의 순환과 자연의 크기를 배워갑니다. 문어는 대개 한두 해 남짓을 살고, 알을 낳고 나면 생을 마칩니다. 짧습니다. 그 짧음을 곁에서 지켜본 남자는, 자기 삶의 시간표를 다시 씁니다.

중년의 위기라는 말을 우리는 너무 가볍게 씁니다. 그런데 그 실체는 대개 이렇습니다. 더 이상 무엇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 이 남자를 구한 것은 성공도, 휴식도 아니었습니다. 다시 무언가에 열중하게 된 것, 그것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을 자연 다큐 칸이 아니라 성장 드라마 칸에 꽂아두었습니다. 40대와 50대 남자들이 봐야 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아들과 함께 본다면 더 좋겠습니다. 실제로 이 작품에는 포스터의 아들 톰이 등장합니다. 아버지가 회복되면서 아들과의 관계도 함께 회복되는 대목이 조용히 깔려 있습니다.

이 작품을 향한 반론도 분명히 있습니다

균형을 위해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이 다큐는 아카데미를 받았지만, 비판도 적지 않게 받았습니다. 핵심은 의인화(anthropomorphism) 논쟁입니다.

  • 일부 해양생물학자들은 문어가 "자식을 위해 희생한다"는 식의 서술이 생물학적 현상을 인간의 도덕적 선택처럼 포장한다고 지적합니다.
  • 야생동물에게 인간의 감정을 투사하는 방식 자체가 과학적 이해를 왜곡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 반대로, 지능이 높고 통증을 느끼는 동물이라는 사실에 부합하는 범위의 '적절한 의인화'는 오히려 보전 활동에 도움이 된다는 반론도 강하게 존재합니다. 하버드에서 열린 관련 패널 토론에서도 양쪽 의견이 함께 다뤄졌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 작품은 과학 다큐가 아니라 1인칭 에세이 다큐입니다. 화자가 자기 감정을 고백하는 형식이고, 그 사실을 숨기지도 않습니다. 객관적 생태 보고서를 기대하고 보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그 점만 미리 알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이런 분께 권합니다 / 이런 분께는 권하지 않습니다

추천비추천
번아웃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40~60대 빠른 전개와 사건을 원하는 분
자연·바다 영상을 큰 화면으로 보고 싶은 분 엄밀한 생물학 정보를 원하는 분
아이·손주와 함께 볼 작품을 찾는 분 (전체관람가) 동물이 다치는 장면에 민감한 분
다큐 제작 과정 자체에 관심 있는 분 내레이션 중심 구성이 지루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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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성격감정 온도
나의 문어 선생님1인칭 교감 에세이따뜻함 / 먹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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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애튼버러: 우리의 지구를 위하여한 인물의 생애 회고 + 경고묵직함
씨스피라시 (Seaspiracy)해양 산업 고발분노 / 불편함

※ 넷플릭스 공개 여부는 시점과 국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시청 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나의 문어 선생님은 실화인가요?

실화입니다. 크레이그 포스터가 2010년경부터 남아공 폴스만의 다시마 숲에서 프리다이빙을 하며 직접 기록한 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다만 1인칭 내레이션으로 감정을 해석하는 형식이라, 관찰 기록과 화자의 해석이 섞여 있다는 점은 감안하고 보시는 편이 좋습니다.

Q2. 문어는 결국 어떻게 되나요? (결말 관련)

구체적인 결말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다만 문어의 수명은 종에 따라 대략 1~3년 정도로 짧고, 암컷은 산란 이후 생을 마감하는 생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보시면 작품의 후반부가 왜 그렇게 흘러가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Q3. 러닝타임과 관람 등급은 어떻게 되나요?

약 85분이며, 넷플릭스 한국 기준 전체관람가입니다. 다만 야생의 포식 장면이 일부 포함되어 있어 어린아이와 함께 볼 때는 부모의 판단이 필요합니다.

Q4. 어디에서 촬영했나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인근 폴스만, 사이먼스타운 근처의 수중 다시마 숲입니다. 대서양의 차가운 벵겔라 한류가 흐르는 해역이라 수온이 매우 낮습니다.

Q5. 어떤 논란이 있었나요?

가장 큰 쟁점은 의인화 논쟁입니다. 일부 과학자들은 문어의 행동을 인간의 감정과 의도로 해석한 서술을 비판했습니다. 반면 이런 감정적 접근이 해양 생물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보전 의식을 높였다는 평가도 함께 존재합니다.

마치며

넷플릭스에는 의외로 좋은 다큐멘터리가 숨어 있습니다. 제목이 촌스러워서, 썸네일이 심심해서, 그냥 취향이 아닐 것 같아서 우리가 지나친 작품들입니다. 저는 앞으로 그 수면 아래를 천천히 뒤져보려고 합니다.

<나의 문어 선생님>은 그 첫 번째 보석입니다. 만약 지금 마음이 조금 지쳐 있다면, 오늘 밤 85분만 내어보시기 바랍니다. 문어 이야기를 보러 들어갔다가, 자기 이야기를 보고 나오게 될 것입니다.

다음 회에도 수면 아래에서 하나 건져 올리겠습니다. 「최PD의 심해 다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