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그해 광주에서 일어난 비극은 우리 세대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낙인으로 남아있습니다. 뉴스를 통해, 혹은 몸으로 직접 겪어낸 그날의 기억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지탱하는 역사의 파편입니다.

그런데 최근 뉴스를 보다 한참을 멈춰 섰습니다. 그 비극적인 역사가 야구장의 '응원가'가 되었다는 소식 때문입니다. 그것도 이제 막 세상을 배워가는 열일곱, 열여덟 살 아이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였습니다.

분노가 앞서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비난만으로는 이 비극적인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없습니다. 왜 아이들은 역사를 놀이로 소비하게 되었는지, 심리학적 관점에서 그 이면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집단 속에서 개인의 브레이크가 꺼지는 이유

사건은 지난 6월 29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청룡기 고교야구 대회'에서 발생했습니다. 배재고 측이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비하하는 내용을 응원가로 사용하여 큰 논란이 일었습니다.

결국 전국대회 6개월 출전 정지와 몰수패라는 중징계가 내려졌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더그아웃에 있던 10명이 넘는 아이들 중 왜 단 한 명도 이를 멈추지 않았을까요?


집단 동조와 탈개인화 현상

1951년 심리학자 솔로몬 애쉬의 실험은 '집단의 힘'이 개인의 판단을 어떻게 압도하는지 보여줍니다. 혼자라면 절대 하지 않을 선택도, 주변 사람들이 동조하면 개인은 자신의 소신을 굽히고 집단의 오답을 따르게 됩니다.

이를 '탈개인화'라고 부릅니다. 유니폼을 입고 함성에 묻히는 순간, '나의 행동'은 '우리의 행동'으로 치환됩니다. 책임이 나누어지면서 죄책감 또한 희석되는 것입니다. 소속감이 삶의 전부인 청소년들에게 집단의 목소리는 개인의 양심보다 훨씬 거대하게 작용합니다.


실감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유희'

사람은 본래 타인에게 상처를 주면 불편함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는 순간, 그 도덕적 장치는 꺼지기 마련입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도덕적 이탈'이라고 합니다.


역사를 기억이 아닌 밈(Meme)으로 소비하는 세대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1980년 5월은 태어나기 30년도 더 전의 아득한 과거입니다. 교과서의 시험 문제, 혹은 인터넷에서 소비되는 자극적인 밈(Meme)으로만 접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단어 뒤에 피 흘린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해 본 적 없는 아이들에게, 5·18은 그저 재미있는 유희의 도구가 됩니다. 악의를 가진 아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비극의 무게를 실감하지 못하고 무비판적으로 동조하는 다수의 아이들입니다.


우리가 역사의 '다리'가 되어야 하는 이유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 과거를 반복할 운명에 처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기억은 저절로 유전되지 않습니다. 누군가 이야기하고 함께 아파할 때 비로소 다음 세대로 건너가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역사를 전하는 법

반면 광주제일고 아이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야유 대신 자신들의 응원가를 불렀습니다. 이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를 자신의 삶으로 체화해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기억이 건너간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의 차이가 그날 두 더그아웃의 운명을 갈랐습니다. 이번 주말, 아이들에게 연도를 외우게 하는 대신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10분의 깊은 대화가 교과서 10페이지보다 더 강력한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이번 논란으로 학생들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되나요?

A1. 학교 차원의 6개월 전국대회 출전 정지 및 해당 경기 몰수패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이외에 추가적인 교육적 조치나 후속 절차는 관련 기관의 규정에 따라 진행될 예정입니다.

Q2. 이 글은 아이들의 잘못을 옹호하는 것인가요?

A2. 결코 아닙니다. 잘못된 행위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다만, 단순히 비난에 그치지 않고 왜 이러한 사태가 발생했는지 심리학적 배경을 분석함으로써 근본적인 재발 방지를 모색하고자 하는 의도입니다.

Q3. 가정에서 역사를 자연스럽게 교육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3. 거창한 역사적 지식보다는 당시의 상황을 개인의 경험이나 감정 위주로 전달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들이 역사를 책 속의 활자가 아니라, 자신의 가족이나 이웃이 겪었던 '살아있는 이야기'로 느낄 수 있게 대화의 기회를 자주 가져야 합니다.